마닐라만의 입구에 자리한 고도화된 주(州) 카비테(Cavite)는, 필리핀 역사에서 중요한 출발점으로 꼽히는 지역입니다. 타갈로그어로 ‘갈고리’를 뜻하는 카윗(kawit)에서 이름을 얻은 카비테는, 본토에서 뾰족하게 돌출된 반도 지형이 특징입니다. 이 해안은 식민지 이전 시대부터 천혜의 항구 역할을 해왔으며, 당시 갈레온선들이 안전하게 정박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후 중국과 라틴아메리카 상인들이 도자기와 비단을 들고 이곳으로 모여들며, 카비테는 일찍부터 교역의 요충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수세기 동안 카비테는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했습니다. 1898년, 필리핀 독립의 상징적 인물인 에밀리오 아기날도(Emilio Aguinaldo)는 자신의 고향인 카윗에서 독립을 선언하며, 필리핀이 국가로 나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하게 했습니다. 마닐라만 어귀에 자리한 코레히도르(Corregidor) 섬은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마닐라를 방어하는 최전선에서 치열한 전투를 견뎌내며 역사적 장소로 남았습니다.
오늘날의 카비테는 상업과 문화, 라이프스타일과 미식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습니다. 동쪽으로는 라구나, 북쪽으로는 메트로 마닐라, 남쪽으로는 바탕가스(Batangas)와 맞닿아 있으며, 이들 고도로 개발된 지역 사이에서 카비테는 쉼 없이 움직입니다. 한쪽에는 다스마리냐스(Dasmariñas), 이무스(Imus), 바쿠어(Bacoor) 같은 인구 밀집 도시가 펼쳐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타알(Taal) 화산을 바라보는 타가이타이(Tagaytay) 고원의 풍경이 이어집니다. 제너럴 트리아스(General Trias)에는 대규모 공장과 물류 창고가 늘어서 있고, 카윗과 실랑(Silang) 같은 마을들은 카비테의 역사와 유산을 차분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먹을거리
개업 후 2년도 채 되지 않아 미쉐린 스타를 획득한 아사도르 알폰소는, 각 분야를 대표하는 세 인물이 함께 완성한 공간입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셰프 첼레 곤살레스(Chele Gonzalez)와 로드리고 안드레스 오소리오(Rodrigo Andres Osorio), 그리고 대담하고 상상력 넘치는 디자인으로 잘 알려진 필리핀 건축가 카를로스 칼마(Carlos Calma)가 그 주인공입니다.
카비테 알폰소(Alfonso)에 위치한 9.4헥타르 규모의 농장형 개발지 안에 숨듯 자리한 이 레스토랑은, 타알 화산을 기하학적으로 해석한 파빌리온 구조로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스페인 장작 화덕 제작 장인 오르노스 후마코 마에스트로(Hornos Jumaco Maestro)가 만든 4톤 규모의 로스팅 오븐은 이곳 요리의 핵심입니다.
젖먹이 양 레차소(lechazo)부터 단골들이 사랑하는 문어 요리 풀포(pulpo)에 이르기까지, 깊은 훈연 향과 독보적인 바삭함은 이 오븐에서 완성됩니다. 메뉴는 ‘저니(Journey)’ 테이스팅 코스 또는 단품 메뉴 중에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아사도르 알폰소에서 남쪽으로 약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미쉐린 셀렉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안토니오스가 자리합니다. 셰프 토니 보이 에스칼란테(Tony Boy Escalante)가 이끄는 이 레스토랑은, 정성스럽게 복원된 스페인식 주택을 가든 에스테이트 안에 옮겨놓은 듯한 공간입니다.
인근 농장에서 공수한 최상급 식재료로 크랩 카펠리니(capellini; 얇은 파스타), 크레페 수제트, 비프 웰링턴 등 프랑스·이탈리아 요리를 선보입니다. 널찍한 벤타닐라(ventanilla) 스타일 창으로 공기와 햇살이 가득 들어오고, 흑백 탈라베라(talavera) 타일과 화려한 샹들리에, 스페인식 스핀들 체어 등이 올드 월드의 우아함을 완성합니다.
인근 도시 파라냐케(Parañaque)에도 주목할 만한 레스토랑들이 모여 있습니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바하이 쿠보(bahay kubo; 대나무와 니파 야자 잎으로 지은 필리핀 전통 가옥) 공간에서 필리핀 요리를 풀어내는 미쉐린 1스타 리남남, 그리고 중국·대만·일본·필리핀 요리를 창의적으로 결합한 빕구르망 쿰바가 대표적입니다.
또한 미쉐린 셀렉션 긴자 나가오카도 들러볼 만합니다. 단 10석 규모의 스시 바에서, 복어 조리 자격을 갖춘 셰프 오너 나가오카 준지(Junji Nagaoka)가 마키와 사시미, 니기리를 선보입니다.
머물 곳
카비테는 5성급 호텔 선택지가 풍부해, 격조 있는 휴식을 어렵지 않게 누릴 수 있습니다.
마닐라 메리어트 호텔 앳 뉴포트 월드 리조트는 상급 호텔에서 기대하는 편안함을 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호텔 안에는 미쉐린 셀렉션 레스토랑 두 곳이 함께합니다. 수작업으로 손질한 스테이크를 선보이는 크루 스테이크하우스와, 정통 광둥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만호가 그 주인공입니다.
솔레어 리조트 엔터테인먼트 시티는 한층 더 화려한 경험을 제안합니다. 세계적 수준의 카지노와 세련된 스카이 데크, 품격 있는 다이닝 공간을 갖췄으며, 이곳의 레스토랑들은 종종 미쉐린 스타 셰프들을 초청해 단독 디너를 선보이기도 합니다.
같은 뉴포트 월드 리조트 단지 안에 위치한 호텔 오쿠라 마닐라는 일본식 정제미와 필리핀 특유의 따뜻함을 조화롭게 풀어낸 공간입니다. 고요한 분위기의 내부에는 미쉐린 셀렉션 레스토랑 야마자토가 자리해, 섬세한 일본 요리를 선보입니다.
대규모 복합 리조트인 시티 오브 드림스로 가면, 대나무 장식이 인상적인 호텔 노부 마닐라를 만날 수 있습니다.
도시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이 호텔에서는 노부 브랜드를 대표하는 일본·페루 퓨전 요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셰프 마츠히사 노부(Nobu Matsuhisa)와 그의 파트너이자 배우인 로버트 드 니로가 함께 만든 이 다이닝 콘셉트는, 이미 전 세계 미식가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즐길거리
자연 속에서 느리고 고요한 오후를 보내고 싶다면, 카비테 곳곳에 자리한 가족 운영 농장을 찾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일로그 마리아 꿀벌농장(Ilog Maria Honeybee Farm)에서는 양봉 과정을 직접 살펴보고, 유기농 밀랍을 활용한 제품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울창한 꽃들 사이에서 식사를 즐기고 싶다면 소냐스 가든(Sonya's Garden)이 제격입니다. 이곳에서는 정원에 둘러싸인 공간에서 팜투테이블(farm-to-table) 식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한편 화산 토양에서 자란 커피로 이름난 아마데오 커피 캐피털(Amadeo Coffee Capital)에서는 지역 커피를 천천히 음미하며 카비테의 또 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에밀리오 아기날도 사당(Emilio Aguinaldo Shrine)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필리핀 초대 대통령 에밀리오 아기날도의 생가로, 이곳에서 국가의 독립이 선언되었습니다.
이어서 실랑에 자리한 칸델라리아 성모 본당(Our Lady of Candelaria Parish)을 방문해보세요. 약 400년에 가까운 시간을 견뎌온 거대한 석조 벽은, 카비테가 품어온 역사와 신앙의 깊이를 고스란히 전합니다.
가족 여행자라면 타가이타이(Tagaytay)에서 즐길 거리가 풍부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화산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타알 화산을 배경으로, 피플스 파크 인 더 스카이(People’s Park in the Sky) 일대에서는 전망을 감상하며 산책하거나 기념품 쇼핑을 즐길 수 있습니다.
피크닉 그로브(Picnic Grove)에서는 승마와 대관람차, 짚라인 체험은 물론 연을 날리거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여유를 보내는 등, 주말 가족 나들이에 어울리는 활동이 이어집니다. 하루를 꽉 채운 뒤에는 필리핀의 웰니스 문화를 이끌어온 선구적 리트릿인 너처 웰니스 빌리지(Nurture Wellness Village)에서 피로를 풀어보세요.
카비테에서는 역사적인 장소와 미식, 넓게 트인 풍경이 한 흐름 안에서 이어집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경험을, 도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도 누릴 수 있다는 점이 이 지역의 매력입니다.
하루를 들여 이 지역의 중요한 역사적 순간을 따라가고, 가장 주목받는 주방의 맛을 경험하거나, 농장과 정원들을 거닐다 보면 이곳이 왜 반복해서 찾게 되는 여행지가 되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됩니다.
기억에 남을 한 끼를 찾고 있든, 조용히 쉬어갈 곳을 원하든,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하루를 그리고 있든 — 카비테는 멀리 떠나지 않아도 충분히 밀도 있는 여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메인 사진 (©MDV Edwards)